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있다.

학교가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으며 기업에는 재택근무 바람이 불고 있다.

규모가 작던 크던 비대면으로 공동의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비대면이 아니라 이전에도 협업은 늘 고민거리였다.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기업 문화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와 성과에 대한 평가까지 고려한다면 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시스템이나 도구는 충분히 발달되어었고 준비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기술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고 비대면이라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지휘자의 감독아래에서 일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문화에 익숙하다면 요즘의 비대면 상황은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비대면으로 협업이 필요하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첫째, 신뢰가 필요하다. 협업이란 일을 나누어 하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직원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상대방 일의 결과를 바로 수요할 수 없다. 반복해서 확인한다 해도 얼굴을 맞대고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다.

비대면 사회에서 이전과 같이 큰 문제없이 업무가 진행되려면 신뢰는 필수적이다.

우리가 배달앱을 통한 음식의 주문도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신뢰는 협업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두번째로 공유와 공개이다. 협업의 핵심요소가 공유다. 더구나 비대면이라면 원할한 공유가 더 없이 중요하다. 업무의 결과와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단지 완성된 결과물만 공유해서 않된다. 업무의 진행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행 단계와 일정,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신뢰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과정의 공유와 함께 공개해야할 것도 많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아니라면 업무상 얻어진 경험이나 지식 등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업무상 비밀이 아닌 이상 빠르게 공개하고 전달하는 것이 공유의 한 방법이다.

 

세번째로 유연성과 자율성이다. 비대면의 경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개인의 일처리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경직된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않된다. 일하는 담당자는 자율적인 업무 진행이 필요하고 그것을 보장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규정을 고집한다면 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없기도 하고 전보다 생산성이 더욱 낮아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대면 환경의 시대에서는 시스템과 발전된 도구 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는 문화적  토대가 필요하다.

생산성은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서 아주 중요하다. 특히, 기업은 생산성에 목을 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외부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하는 경제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무슨 수라도 쓰려고 한다. 당연하다.

 

생산성은 단위기간당 투자되는 자원(자금, 인력, 에너지 등등) 대비 얻어지는 결과의 비율이다. 그렇기에 기업이 매출과 수익을 높이려고 애쓰는 것과 더불어 투입되는 자원은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쉴틈이 없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면 더욱 그렇다.

기업이 이토록 생산성 향상에 모든 노력을 다한다면 개인은 어떠할까?

시대 상황이 점차로 끝없는 경쟁에 몰리다보니 아무리 워라밸을 주장하더라도 스스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의 역량이 높아지고 효율적인 관리가 진행될 수록 기업의 생산성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개인이 기업과 같은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개인이 기업을 구성하기는 하지만 기업과 개인이 동일한 목적과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존재하기도 하고 기업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것이 우선일까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한,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경쟁의 구조와 환경이 다르다.

사람의 삶은 속도와 수치의 경쟁 외에 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삶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평가는 나타난 무리적 결과로 평가하지만 개인은 살아가는 과정과 타인과의 관계, 스스로의 만족과 행복감 등의 정서적이며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요소들로 평가한다.

 

결국 개인에 대한 생산성의 정의를 달리해야 하는 것이다.

일을 잘하는 개인에 대해 생산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업무능력이나 경제활동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속도와 삶의 방식이 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이 생산성이 낮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개인의 목표를 정하고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성공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개인의 삶에서 생산성이라는 단어는 쓸모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위한 자기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삶의 눈높이를 다시 맞추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성장으로 한껏 고무되어 자신의 눈높이를 잔뜩 높이고 미래에 대한 꿈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
꿈을 높게 갖는 것이야 당연하고 그래야 발전이 있으니 좋은 것이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면 망상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빠르게 질주하는 고속열차에 타고 있으면 스쳐가는 경치를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 누릴 수 있는 혜택과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생기는 경제적 문화적 변화는 그동안의 삶의 형태를 송두리채 바꿀 것이다.
기존의 눈높이 맞는 생활을 고집하면 극심한 스트레와 좌절을 느낄 듯 하다.

삶의 눈높이는 자신의 환경과 상황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미래의 성장 시점에 맞추어진 눈높이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준비없이 목표만을 위해 달려오면서 목표에 고정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생각하지 못했거나 잊고 지냈던 것에 대한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꿈은 미래를 향하지만 현재를 딛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실에 맞는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지금 가능한 것과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생각해야한다.
사람마다 눈높이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눈높이와 비교하며 따라가는 것은 스스로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 삶의 눈높이를 찾고 알아야 한다.

겨울을 지나고 봄이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설레는 것이 당연하지만 올해는 느닷없는 코로라 바이러스로 심각하게 움츠러들고 활동을 주저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결과가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만남을 꺼리고 스스로 행동을 제약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혼란은 결국에 정리되고 안정이 되겠지만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펴지지 않을 것이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와 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더구나 소득이 줄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이상의 경제침체가 걱정된다.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금하는 일을 지속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IMF 시절에 기업이 무너지면서 4,50대가 길거리로 내몰리던 상황이 그려진다. 더구나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따라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시야를 넓히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야 한다. 한가롭게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 코로나로 활동이 위축되고 제약이 많지만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봐야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영역을 봐야한다. 어디엔가 다른 가능성이 싹트고 있을 것이다.

 

따뜻한 봄이다. 세상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한 길을 나서자.

길을 나설 때 신발끈을 고쳐 매듯이 마음먹고 길을 나설 때면 가방을 챙긴다.

가방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가방을 챙긴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하기위한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새로 가방을 하나 만들었다. 새 가방을 들고 가방속에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 다녀보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이 계획을 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목표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이 있을 때 달성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목표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것이다.  언제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 달성의 희망을 갖게 만드는 것이 기회이다.

꾸준히 발전시켜 온 문화와 패러다임 속에서 설정한 목표를 위한 다양한 기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외부의 큰 충격에 의해서 패러다임이 바꿔 버리면 순간 우리는 기대하던 기회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늘 상존하던 위기가 COVID 19 로 극대화된 지금 기존에 세웠던 많은 전략과 방법이 무력화되고 있다. 그동안 기대하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기회로 여기던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회가 사라지면서 사회적 경제적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이미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허둥지둥 당황하지만 빠르게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새롭게 발견하는 가능성은 있다. 어차피 쉽게 예상하던 상황은 아니다. 알고있던 기회는 사라졌으나 생각하지도 않았던 분야에서 가능성을 찾아보자.

어쩌면 새로운 분야가 아니라 다른 접근 방식, 패러다임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정답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집단으로 일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벤트가 비대면 서비스로 대체되고 전통적인 방식의 비즈니스가 무력화될 상황이다.

IMF 당시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단순히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고 구조를 바꿔여 한다면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나 늘 그렇듯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는 기존의 기회가 사라질 지라도 개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기이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가능성을 찾기 위한 노력과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기업에서 결재하는 단계중 보류 항목이 있을 때가 있다. 과거에는 임원의 책상에 기결 미결 보류의 결재함이 있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잘 안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전자결재가 일반화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늘 의아했던 것이 보류 항목에 들어간 결재 서류는 어떻게 되는가?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였다.
회사의 업무 중에 결재의 과정이 꼭 있게 마련이다.

업무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요인으로 결재 과정을 살펴보자. 결재는 자신의 생각이나 일의 결과 등을 윗사람 또는 결정권자에게 승인 받는 과정이다.
승인권자는 결재항목에 동의 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 그런데 보류는 무슨 의미일까? 나중에 보자는 것이다. 동의도 아니고 거절도 아니고…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가고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사결정이 중요하다. 잘못된 의사결정도 문제이지만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보류한다는 것은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판단을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보완을 해야 하지 결정을 미루어서는 않된다. 충분한 정보가 확보되면 승인과 거절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일로 진행된다.

또한 보류하는 것은 승인권자의 무책임이기도 하고 횡포이기도 하다.

 

나는 결정이 곧 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결정이 내려지고 그 결정에 동의하면 사람들은 움직인다, 일을 한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다. 간혹 잘못된 결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막연히 결정을 미루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무엇인가 결정해야 한다면 승인이나 거절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판단이 어렵다면 보완 지시를 하거나 거절하고 수정해야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즉시 판단해야 한다.

나무는 자신의 씨앗을 퍼뜨려 숲을 만든다.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떨어뜨리고 싹을 틔우고 점차 영역을 넓혀간다.

가까운 곳은 떨어뜨린 씨앗으로부터 싹이 나오지만 멀리 있는 곳은 바람이나 동물이 옮겨주는 씨앗이 필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키우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활동무대를 넓히기를 바란다.

주변을 확장하는 것은 지금의 방법으로 가능하지만 새로운 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간단히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거나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형태의 새로운 숲을 만들지는 알수 없다.

 

누구나 항상 새로운 숲을 만들기 위한 씨앗을 퍼뜨려야한다. 그렇다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시도 끝에 작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씨앗 퍼뜨리기를 멈추면 다른 나무에 묻혀 사라지게 된다.

컴퓨터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 특히 전문가들은 백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백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낭패를 본 경험이 한두번쯤은 누구나 있다보니 나름의 백업 방법을 갖고 잘하고 있을 것이다.

백업을 하는 좋은 방법은 이미 다 알고 있기에 더 설명할 필요는 없다.

 

최근 운영하는 사이트 하나가 문제가 발생했다. 홈페이지 문제야 늘 벌어지는 것이므로 제대로 대처하면 되겠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어쨌든 문제를 발견했으니 백업된 파일로 복구하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매주 백업을 하고 몇주정도의 백업본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다른 걱정없이 복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백업할 때는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복구하는데 필요하 파일과 설정값, 데이터베이스 등을 백업하기도 하며 전체 내용을 백업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복구가 않될까?

주기적인 백업을 하면서 무한대로 변경사항을 저장하지는 않는다. 개발자들이야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는 코드 수정 이력을 파악하겠지만 완성되고 잘 운영되는 사이트야 중간의 모든 변화를 무한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백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백업 이후에 변경된 내용은 일부 손상이 되어도 백업시점의 내용으로는 복구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주기적으로 백업하면 일정 시점의 상태를 저장하면서 몇단계 시점까지는 백업하지만 그 이전 내용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사이트의 겉모습만 보고 정상작동으로 알고 있었으나 내부에서 이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자주 들어가 보지 않는 사이트이다보니 중간에 문제가 생긴 것을 모른채 손상된 파일이 백업되고 몇번의 주기를 거치며 정상적인 파일은 삭제된 것이다.

결국 이상이 있는 내용을 백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문제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상태로 어느 순간 사이트가 망가진 것을 확인하고 복구해봐야 회복 불능이다.

무엇을 백업한 것인가?

백업을 한다는 것은 정상상태의 것을 백업해야 하는데 지금이 정상인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백업을 무조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백업하는지 알아야 한다.  백업 이전에 항상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항상 최선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사실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사람은 왜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일을 알 수는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철썩같이 믿고 자기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는 정보들이 있다. 안타까운 것든 대부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거나 자기 상황을 합리화 시키기 편한 형태로 편향과 오해를 갖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믿는 것이 고민없이 세상을 판단하는 방법일 수 있다.

설 연휴를 지나며 팩트풀니스를 읽었다. 특별한 통찰이나 깨달음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 우리의 편협한 사고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치명적인 폐렴으로 발전하며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뉴스가 사방에서 들린다.

심지어 중국인을 한국에 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청원이 수십만을 순식간에 넘었다.

요즘처럼 이동과 교류가 많은 시대에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대응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지난해 강원도 산불에서 느낀 것이 초기에 위험에 대한 대처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원인과 치료법도 잘 모르는 바이러스에 최선을 다해 대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질병이 엄중하기는 하지만 특정 사항만 부각시켜 공포를 과장하고 갈등과 편견을 증폭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나머지 일을 다 무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어느 한가지 일은 흔하지 않다. 단지 지금의 관심이 그곳에 집중될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편향과 오해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이 중요하다. 

누구나 환상처럼 선망하는 것 중 하나가 저녁이 있는 삶이다. 듣기에 굉장히 멋지고  가장 이상적인 생활이다.

지금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제도가 바뀌고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된다면 경제적 안정과 더불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좀 더 가능할 것이다.

항상 꿈과 목표를 생각하고 추구하면서 빠뜨리는 것이 있다. 목표 달성까지는 계획이 있으나 목표를 달성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녁이 있는 삶이 주어진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은 있고 준비는 하고 있는가?

우선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이후는 그 때 생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지금 해보지 않은 일을  나중에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시작된다. 어쩌면 다시 저녁이 없는 삶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있다.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않으며 또다른 짐이 될 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목표가 되어서는 않된다. 여유가 생겼을 때 그것을 활용하고 즐기며 의미를 찾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갈수록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남는 시간을 쓸 방법이 없다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취미이거나 다른 생산적인 일이거나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며 그에 맞는 준비와 연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에 생각해보지 못한 여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준비 없이 노인이 된 분들이 거리에서 많이 보인다.

그분 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장년들도 앞으로 주어질 여유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경제적이 안정을 빨리 이루면 뭔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조바심이 많아 보인다. 이것은 청년들도 큰 차이는 없다.

젊어서 부터 오랜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재능을 키우고 관심 분야에 대한 꾸준한 활동과 참여를 통해 의미있는 삶을 위한 준비와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갑자기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

젊었을 때 얻어지는 여유의 시간에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고 시작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시도하며 작은 결과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것이 의미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