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은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서 아주 중요하다. 특히, 기업은 생산성에 목을 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외부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하는 경제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무슨 수라도 쓰려고 한다. 당연하다.

 

생산성은 단위기간당 투자되는 자원(자금, 인력, 에너지 등등) 대비 얻어지는 결과의 비율이다. 그렇기에 기업이 매출과 수익을 높이려고 애쓰는 것과 더불어 투입되는 자원은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쉴틈이 없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면 더욱 그렇다.

기업이 이토록 생산성 향상에 모든 노력을 다한다면 개인은 어떠할까?

시대 상황이 점차로 끝없는 경쟁에 몰리다보니 아무리 워라밸을 주장하더라도 스스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의 역량이 높아지고 효율적인 관리가 진행될 수록 기업의 생산성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개인이 기업과 같은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개인이 기업을 구성하기는 하지만 기업과 개인이 동일한 목적과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존재하기도 하고 기업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것이 우선일까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한,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경쟁의 구조와 환경이 다르다.

사람의 삶은 속도와 수치의 경쟁 외에 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삶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평가는 나타난 무리적 결과로 평가하지만 개인은 살아가는 과정과 타인과의 관계, 스스로의 만족과 행복감 등의 정서적이며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요소들로 평가한다.

 

결국 개인에 대한 생산성의 정의를 달리해야 하는 것이다.

일을 잘하는 개인에 대해 생산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업무능력이나 경제활동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속도와 삶의 방식이 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이 생산성이 낮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개인의 목표를 정하고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성공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개인의 삶에서 생산성이라는 단어는 쓸모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위한 자기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누구나 환상처럼 선망하는 것 중 하나가 저녁이 있는 삶이다. 듣기에 굉장히 멋지고  가장 이상적인 생활이다.

지금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제도가 바뀌고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된다면 경제적 안정과 더불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좀 더 가능할 것이다.

항상 꿈과 목표를 생각하고 추구하면서 빠뜨리는 것이 있다. 목표 달성까지는 계획이 있으나 목표를 달성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녁이 있는 삶이 주어진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은 있고 준비는 하고 있는가?

우선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이후는 그 때 생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지금 해보지 않은 일을  나중에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시작된다. 어쩌면 다시 저녁이 없는 삶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있다.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않으며 또다른 짐이 될 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목표가 되어서는 않된다. 여유가 생겼을 때 그것을 활용하고 즐기며 의미를 찾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갈수록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남는 시간을 쓸 방법이 없다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취미이거나 다른 생산적인 일이거나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며 그에 맞는 준비와 연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에 생각해보지 못한 여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준비 없이 노인이 된 분들이 거리에서 많이 보인다.

그분 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장년들도 앞으로 주어질 여유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경제적이 안정을 빨리 이루면 뭔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조바심이 많아 보인다. 이것은 청년들도 큰 차이는 없다.

젊어서 부터 오랜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재능을 키우고 관심 분야에 대한 꾸준한 활동과 참여를 통해 의미있는 삶을 위한 준비와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갑자기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

젊었을 때 얻어지는 여유의 시간에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고 시작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시도하며 작은 결과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것이 의미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다.

3년 전 오늘 춘천에 자리 잡았다.

고향도 아니고 친척도 없으며 춘천에서 일을 하지도  않지만 서울에서 산 50년 이후의 삶을 춘천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겨울을 세번 나고 네번째 겨울을 준비하면서 어느정도 적응되어 간다.

 

서울과 다르게 큰 건물에 시야가 막히지도 않고 둘러싼 산과 강으로 겨울은 서울보다 좀 더 춥다. 특히, 밤기온은 서울보다 더 낮다. 춘천은 작은 도시다. 강원도청이 있음에도 인구가 30만도 채 되지 않는다.

역동적인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살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대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는데 필요한 것은 다 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답답할 수 있다. 특별한 산업이 없어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나역시 춘천에서의 경제활동은 거의 없다. 직업의 특성이 한 곳에 출근하지 않는 자유업이다보니 춘천 생활에 불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체된 느낌을 받는다.

 

춘천은 관광도시다. 한해에 춘천을 찾는 사람들이 1,000만명이 된다고 한다. 교통도 편하다. 기차와 버스가 전국으로 잘 이어져 있다.

누구나 춘천에 대한 추억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기억되는 춘천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산과 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특별한 관광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춘천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한 역사나 문화가 있지 않지만 수도권에서 가까운 강원도의 도시다보니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추억의 도시처럼 인식되어 있다.

 

춘천에 와서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기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춘천사람이 되고 있다.

부인이 서울에서 하던 재봉틀 공방을 춘천에서 이어가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나도 취미로 시작했던 가죽공예를 조금씩 펼쳐보고 있다.

서울을 오가면서 창업교육 관련 일을 하면서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동안 살아온 방법이 있고 습성이 있지만 앞으로는 사는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쓰던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클러치백이 팔렸다.

다시는 만들 수 없는 가방이라 팔고 싶지 않았지만 굳이 사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원하는 사람이 있기에 흔쾌히 팔고 다시 만들어 보자 마음 먹고 만든 가방이다.

나가 쓰는 용도에 따라 크기와 디자인을 결정하여 만들었다.

노트북을 넣을 수 있어야 하고 함께 가지고 다니는 노트와 펜을 넣을 수 있어야하고 약간의 서류 정도가 들어가되 너무 크지 않고 딱 맞는 형태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 가죽을 사기에는 부담이라 있는 가죽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어울리는 장식을  선정하고 재단을 한 후 한땀 한땀 바느질.

만들어진 결과는 대 만족이다.

이렇게 기분전환 한다.

이번 가방은 팔지 말고 계속 써야겠다.

춘천에 김유정역이 있다.  사람 이름을 역이름으로 사용한 곳은 김유정역 뿐이다.

김유정역에 내리면 금병산이 있다. 김유정의 소설과 삶을 중심으로 실레 이야기길이 조성되어 있다. 특별한 시설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병산 허리를 돌아 한시간 반 정도 걷는 길로 산책길 정도의 난이도이다.

물론 금병산 정상까지 돌아 오는 코스도 있지만 가볍게 걷기에는 실레 이야기길이 적당하다.

산책하다보면 김유정의 소설속 이야기를 풀어 놓은 안내판이 여러개 놓여있다. 그것이 끝이다. 역 앞에는 문학촌도 있고 작은 놀이시설도 있지만 산책길을 따라 걷는 코스는 특별한 매력은 없다. 그럼에도 호젖하게 걷기에 좋다.

산이 험하지 않으니 오히려 전문 등산가(?)들은 잘 오지 않는다. 춘천에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적당한 숲길이다. 김유정역 주변은 최근 몇년 사이에 많이 번화해졌다. 그래봐야 건물 몇개 들어선 것이지만 아주 썰렁하진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아지겠지만 실레마을 중심으로 좀더 스토리를 만든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올라가는 길에 인쇄박물관도 있고 카페와 식당들이 있지만 마을이 크지는 않다.

길도 여유롭고 조용하며 넓다.

장마가 온다는 날이기는 하지만 춘천에는 오늘 밤에나 비가 올 것이다.

비오기 전이라 구름은 많이 끼어 있고 습도가 높긴 했지만 덥지않고 걷기 좋은 수요일 산책이다.

 

춘천에 온다면 한번 쯤 가볼만한 곳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2주 후면 2019년이다. 지금쯤 한해를 되돌아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기억할 것도 있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도 있다.

좋은 일, 나쁜 일, 굉장히 많은 일이 지나갔다. 누구는 더 바쁘고 덜 바쁜 것은 아니다. 똑 같은 한해를 보낸 것이고 모두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시간 시간을 지나왔기에 한해를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있을 것이고 각각의 비중을 달리 생각할 것이다.

나역시 2018년에 회사를 새로 만들었다. 이미 있던 개인회사와 별개로 부산에서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법인으로 “미래시민능력개발원” 을 만든 것이다.
아직 일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남은 2주안에 의미있는성과를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다. 가능할 수도 있고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어쨌든 막바지 긴장의 끝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 일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내가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일임에도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열정과 노력만으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일을 하려면 나에게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2019년에는 나만의 무기를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확실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좋기는 하지만 애매한 것, 남들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승부의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콘텐츠가 없는 것 같다. 뭔가 많이 해왔지만 아직 실체를 만들지 못했다. 앞으로 집중해서 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나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만들아야 한다. 2019년을 기대하는 이유이고 목표이다.

2018년은 많은 변화와 변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시도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는 한해였다. 그러면서 수업료도 많이 냈다. 이제부터 결과를 신경쓰고 새로운 미래를 계획해야한다.

그리고 남은 2주동안 2018년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평가와 반성, 계획을 세우자.

미래시민능력개발원

뭐 하나 부족함이 없다. 내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오로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단지 내 지갑일 뿐이다.

우리는 충분히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빈곤을 느끼고 있다.

 

기술이 발달되어 생산성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요구와 다양성이 늘어나면서 원하는 것은 모두 있을 것 같은 세상이다.

물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형의 정보와 지식의 양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과잉의 시대가 되면서 막상 선택은 어려워지고 더 새롭고 더 좋은 것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부족함이 없는 속에서 편리함과 만족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부족한 것이 없다보니 늘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린다.

애착과 절실함이 희박해진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존재하므로 굳이 노력을 해서 만들고 찾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발전과 혁신이 줄어들고 성장이 멈춘다.

이미 누군가 다 만들어 놓은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얻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수익을 얻는 것이 관건이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조급해 하며 스트레스 받고 불만이 생긴다.

 

과거 결핍의 시대와는 다른 스트레스다.

결핍에서 과잉의 시대로 변하면서 간절하고 절실함은 성장과 발전에서 쾌락과 만족으로 가치를 옮겨가고 있다.

 

부족함이 없는 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독이 되기도 한다.

발전을 위한 적당한 목표와 동기부여가 없다면 꿈과 희망이 없어진다. 현실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다.

과잉이 결핍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시대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생각을 분산시키는 요소가 너무 많다.

우리가 과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핍은 빈곤과 불편이기에 탈출하고자 애쓰지만,

과잉은 부족함이 없어 게으름과 안주함을 만들어 낸다.

 

스스로의 과잉과 결핍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유혹이 너무 많다.

 

누가 시민일까?

도시에 살면 모두 시민일까? 아니면 모두가 시민일까? 사전에서야 뭐라 말하던 우리들을 시민이라고 한다.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나 유래 보다는 스스로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 받으려면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시험을 봐서 평가하거니 누군가가 인증해 줄 수는 없다.

시민이 갖추어야할 것들을 갖추고 있으면 시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민이라는 말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속에서 의미있는 말이다.

 

그렇다. 시민의 중요한 의미는 여러사람이 어떻게 모여 사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었일까?

많은 자원과 구조, 체계 등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기반이 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이해 정도이며 이해하는 방식이다.

요즘 주로 쓰는 말로 소통이며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 되면서 소통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말로만 끝나지 말고 의미있는 성과를 만드는 활동이 필요하다.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통의 조건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주장이나 설명이 아닌 대화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화를 하면 공감대를 만들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말은 쉽지만 잘 안된다. 그래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 함께 하면 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주제로 비난과 반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자기 생각을 발전 시키는 훈련을 여러 지역에서 하고 있다.

나 역시 춘천에 살면서 춘천에서도 꾸준하게 춘천 대화 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누구나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참석할 수 있다.

 

3분씩 돌아가면서 대화하는 공감토론 방식으로 참여의 벽을 낮추고 공감 훈련을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잘 소개한 최근 나온 책이 있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 시민의 자격은 아닐까? 대화를 통해 공감할 수 있다면 시민으로 충분할 것이다.

미래에 우리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공상과학같은 얘기가 아니라 곧 마주할 노후 또는 은퇴 이후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기대하는 모습 중 하나는 젊어서 준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늘 편안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고급의 새로운 것들을 먹는 모습들을 상상한다.

언제부터 노후이고 은퇴시점인지 정해진 것은 없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런 생활로 이어진다.

열심히 일하다 어느날 갑자기 노후로 정의된 일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던 일이 정리되는 시점은 있다. 회사에서 퇴근 시간에 일을 마치듯 노후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노후를 맞이해야 하는가?

노후와 그 이전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어제의 다음날이 오늘이듯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나이듦의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후가 되면 뭔가 크게 달라져야 할까? 오늘의 연장이 내일이 되고 젊음의 연장이 노후가 되는 것이다. 노후만 별도로 준비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을 열심히 살 듯  미래에도 노후에도 열심히 살아야 하며 의미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 생산적인 삶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높이고 키우는 것만 생산적인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삶에 대한 기준이 변하고 사람마다 다르다.

이제 노후이니까 전과 다르게 즐기기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길다. 수명은 점점 길어진다. 지금 예상하는 대로 미래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막연하게 희망하다보면 당황하거나 좌절할 수 있다. 세상이 나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생산적인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가치관에 맞는 능력을 꾸준히 키우고 가치를 높이며 변하는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산적인 미래를 만드는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해야할 일을 찾을 수 있고 삶의 동력이 생긴다. 

흥미가 있고 관심이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 오늘의 결과에서 더 발전 시키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생산적인 일이다.

사람은 생산자이기도 하고 소비자이기도 하다. 결국 소비와 생산이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만큼 생산해야 자연 법칙에 맞는 것 아닐까?

더 이상 생산이 없이 소비만 하는 순간 삶은 끝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춘천에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 춘천이 눈이 많은 동네이지만 생각보다 별로 안온 것이다.

어제(12월 10일)은 눈이 꽤 많이 왔다. 그리고 오늘부터 기온도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주간 일기예보를 보니 낮에도 영상으로 올라가는 날이 별로 없다.

생각해보면 최근 몇년 따뜻한 겨울이었다.

춘천에 이사온지 겨우 일년이라 지난해 말고는 겨울에 대한 경험이 없다. 오래전에 눈 구경하러 놀러온 기억 뿐이다.

오래전 춘천의 겨울에 대한 기억은 눈이 아주 많은 동네라는 것이다.

어제 눈 오는 것을 보니 다시 실감이 나는 듯하다. 어제 내린 눈도 도시가 잠길정도의 눈은 아니다. 서울과 다르게 내리면서 바로 녹지 않고 꽤 쌓인 것이다.

오늘 아침에 보니 차가 다니는 길이야 정리가 되었지만 골목길은 빙판이다. 한주 내내 다니기 쉽지 않겠다.

겨울 준비를 좀 더 신경써야겠다.

집앞에 내리는 눈은 계속 쓸겠지만 골목길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대로 걸어다닐 수는 있지만 차는 문제가 좀 있겠다.

그리고 난방과 보온도 더 신경 써야 한다.

 

어릴 때 겨울은 추웠던 기억이 많다. 그러다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춥고 불편했던 기억이 사라졌다. 드라마에서나 옛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대도시의 아파트의 편리함에 현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춘천에서 두번째 겨울을 맞이하며 삶의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