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조직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된다. 조직 뿐 아니라 이해 당사자가의 범위가 넓어져서 관리하고 신경써야할 것이 많아진다.

일의 성과를 위해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룹의 단위가 커지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목표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 성과를 내기만 한다면 문제없다라고 할 수 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연계와 협력이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물리적으로 조직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을 하기 위한 기본 단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적절한 팀 크기가 피자 두판으로 해결할 수 있는 크기라고 했다.

이렇듯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화와 관계 형성에 소외됨 없이 유지할 수 있는 크기의 한계가 있다. 한 두사람일 수도 있고 십여명이 넘어갈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팀의 기본 단위는 하나의 테이블에서 대화하기 편한 숫자이다. 너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고 표정을 살필 수 있으며 골고루 발언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지도 않는 크기이다. 약 5, 6명 정도일 것이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승용차 하나로 함께 이동이 가능한 5명 이내면 좋겠다. 이렇게 최소 단위의 항상 대화가 이루어지고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그룹이 여러개 모이게 되면 그 이상은 생각보다 쉽게 일이 된 경험이 많다.

작은 그룹의 대표가 모이더라도 충분히 그들의 그룹에서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그룹에서 자신있게 의견을 내 놓을 수 있게 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 두 사람이 소외되기 시작하면 그 조직은 목소리 큰 사람 하나만 남게 된다.

한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면 미래가 없다.

 

누가 시민일까?

도시에 살면 모두 시민일까? 아니면 모두가 시민일까? 사전에서야 뭐라 말하던 우리들을 시민이라고 한다.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나 유래 보다는 스스로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 받으려면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시험을 봐서 평가하거니 누군가가 인증해 줄 수는 없다.

시민이 갖추어야할 것들을 갖추고 있으면 시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민이라는 말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속에서 의미있는 말이다.

 

그렇다. 시민의 중요한 의미는 여러사람이 어떻게 모여 사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었일까?

많은 자원과 구조, 체계 등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기반이 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이해 정도이며 이해하는 방식이다.

요즘 주로 쓰는 말로 소통이며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 되면서 소통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말로만 끝나지 말고 의미있는 성과를 만드는 활동이 필요하다.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통의 조건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주장이나 설명이 아닌 대화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화를 하면 공감대를 만들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말은 쉽지만 잘 안된다. 그래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 함께 하면 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주제로 비난과 반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자기 생각을 발전 시키는 훈련을 여러 지역에서 하고 있다.

나 역시 춘천에 살면서 춘천에서도 꾸준하게 춘천 대화 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누구나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참석할 수 있다.

 

3분씩 돌아가면서 대화하는 공감토론 방식으로 참여의 벽을 낮추고 공감 훈련을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잘 소개한 최근 나온 책이 있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 시민의 자격은 아닐까? 대화를 통해 공감할 수 있다면 시민으로 충분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공론화 과정에서 “숙의와 합의”가 떠오르고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결정이 잘 된 것인지 잘못 된 것인지가 아니라 숙의와 합의에 대해거 생각해보고자 한다.

어떻든 수백명이 모여서 몇달동안 의논을 해서 결론을 내렸다. 그 동안 여러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참여자들이 많은 토론을 통해 숙의하고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이슈가 되는 것일까? 신고리 원전 건설이 중요하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의 이벤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숙의하고 합의하는가이다.

무작정 많은 사람이 모여서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많아지고 첨예한 문제라면 더 어렵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이 선발되어 그들이 합의하게 된다.

긍극적으로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해서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 하는것이 맞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들의 선택이 그러할 수도 있지만 또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우리는 충분히 숙의하고 합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정리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청취하고 이해해서 해석할 수 있어야한다. 불만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막상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말하지 못한다. 동의한다 하더라도 다른사람의 결정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모여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관련된 사람들이 참여해서 의논을 했다면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숙의와 합의를 하고자 한다면 훈련이 필요하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평소에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훈련이다. 충분한 대화와 이해가 없이 논리에 대한 학습만 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러다보니 내말이 맞고 다른 사람 말이 틀리다.

어릴 때부터 누구나 나름의 합리적인 생각이 있는 주체임을 알고 공평하게 대화하고 타인의 상황과 생각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대화가 쉬워 보이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갈등과 반목을 줄이고 관계를 개선하고 더 나은 통합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대화가 충분하게 훈련되어 있어야 숙의와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막연히 이번 공론화 과정 한번을 보고 숙의와 합의가 쉽게 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꾸준히 노력하고 평소에 훈련해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주 좋은 방법이 수평적 공감토론이다. 비난과 반대 없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공평하게 말하는 것이 출발이다.

관련하여 올 여름 부터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춘천 공감대화마당이다. 이것은 시민이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갖고 대화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대화 방식이다. 춘천 공감대화마당은 별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평하게 대화하고 올바른 토론을 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다.

춘천에 산다면, 춘천에 오실 수 있다면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다. 모여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바탕으로 모인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이므로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두시간 정도 자신의 커피값 정도만 가져 오시면 된다. 우두동의 한 커피숍에 모이기 때문이다.

숙의와 합의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대화하고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사안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과 지식도 필요하다. 앞으로 숙의해야할 일 합의해야 할 일이 많다. 그것이 이시대의 시민이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