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와 합의”의 조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공론화 과정에서 “숙의와 합의”가 떠오르고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결정이 잘 된 것인지 잘못 된 것인지가 아니라 숙의와 합의에 대해거 생각해보고자 한다.

어떻든 수백명이 모여서 몇달동안 의논을 해서 결론을 내렸다. 그 동안 여러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참여자들이 많은 토론을 통해 숙의하고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이슈가 되는 것일까? 신고리 원전 건설이 중요하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의 이벤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숙의하고 합의하는가이다.

무작정 많은 사람이 모여서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많아지고 첨예한 문제라면 더 어렵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이 선발되어 그들이 합의하게 된다.

긍극적으로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해서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 하는것이 맞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들의 선택이 그러할 수도 있지만 또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우리는 충분히 숙의하고 합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정리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청취하고 이해해서 해석할 수 있어야한다. 불만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막상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말하지 못한다. 동의한다 하더라도 다른사람의 결정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모여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관련된 사람들이 참여해서 의논을 했다면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숙의와 합의를 하고자 한다면 훈련이 필요하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평소에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훈련이다. 충분한 대화와 이해가 없이 논리에 대한 학습만 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러다보니 내말이 맞고 다른 사람 말이 틀리다.

어릴 때부터 누구나 나름의 합리적인 생각이 있는 주체임을 알고 공평하게 대화하고 타인의 상황과 생각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대화가 쉬워 보이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갈등과 반목을 줄이고 관계를 개선하고 더 나은 통합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대화가 충분하게 훈련되어 있어야 숙의와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막연히 이번 공론화 과정 한번을 보고 숙의와 합의가 쉽게 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꾸준히 노력하고 평소에 훈련해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주 좋은 방법이 수평적 공감토론이다. 비난과 반대 없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공평하게 말하는 것이 출발이다.

관련하여 올 여름 부터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춘천 공감대화마당이다. 이것은 시민이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갖고 대화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대화 방식이다. 춘천 공감대화마당은 별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평하게 대화하고 올바른 토론을 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다.

춘천에 산다면, 춘천에 오실 수 있다면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다. 모여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바탕으로 모인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이므로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두시간 정도 자신의 커피값 정도만 가져 오시면 된다. 우두동의 한 커피숍에 모이기 때문이다.

숙의와 합의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대화하고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사안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과 지식도 필요하다. 앞으로 숙의해야할 일 합의해야 할 일이 많다. 그것이 이시대의 시민이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대화도 학습이 필요할까?

누구나 할 줄 아는 것이 대화이고 말하기이다. 그럼에도 대화에 대한 교육도 있고 대화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며 책도 많이 나와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책으로 공부해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쉬운 것이다.

책속에는 길이 있다고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더 똑똑해지고 유능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책속에있는 길을 열심히 찾고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애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길을 실제로 가보는 것, 지식을 활용해서 실현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경험과 지식이 부족할 때 우리는 공부를 한다. 그렇게 해서 지식과 이해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자신의 수준이 높아짐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만족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한다.

 

대화는 어떨까?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심해지며 싸움이 생기다보니 대화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도 많고 관련 책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어떻게 대화하라고 하지만 막상 대화는 하지 않는다. 내가 알려준 대로 대화하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학자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학자일 필요는 없다.

실천을 해야 한다. 더 많은 길을 찾기보다 하나의 길이라도 가 보는 행동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이론을 고민하지 말자.

학습하지 말고 대화하자.

필요하다면 대화 속에서 학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화를 두려워 하지 말자.

지식으로 대화 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늘 대화하는 습관을 갖자.

 

우리는 왜 대화를 해야 할까?

한때 개그 프로그램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성숙해가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환경이 다양해 지면서 한편으로는 대화하기 어려워지고 그렇기 때문에 대화의 필요를 역설한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대화가 필요한 것은 맞다.

이렇게 필요한 대화를 왜 하기 어려운가? 굉장한 지식이나 노하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대화에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대화 일수도 있고, 상대방을 설득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 시키고자 하는 것도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필요할 수도 있다.

경쟁관계에 있어서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갈등을 유발하거나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대화는 비슷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화의 끝은 항상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각한 싸움이나 갈등은 아니더라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대화가 많다.

 

우리가 대화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

열심히 자기의 올바른 생각을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경청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잘 생각해 보면 나는 중요한 얘기를 하니 너는 잘 경청하라는 말이 된다. 물론 가끔 역할을 바꾸어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한다.

 

훈련의 정도나 경험 지식, 환경, 성격의 차이에 따라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나름의 의견과 생각은 갖고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생각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똑 같다.

그레서 말하는 것도 고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비난과 반대 없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대화가 중요하다.

경쟁적으로 자신의 발언 기회를 차지하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가 신물을 내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도 하면서 더 나은 합의에 도달 할 수 있다.

최근 노력하고 있는 공감토론이 바로 그런 형태이다.

공감토론을 확산하고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문화를 만들고자 춘천 공감대화마당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지 못한다.

아직 익숙하지도 않고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이다.

그렇지만 이미 구성된 모임이나 집단에서는 이런 방식의 대화를 하기 쉽고 반목과 갈등이 줄어드는 토론과 합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

비난과 반대없는 공평한 대화. 충분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