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부족함이 없다. 내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오로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단지 내 지갑일 뿐이다.

우리는 충분히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빈곤을 느끼고 있다.

 

기술이 발달되어 생산성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요구와 다양성이 늘어나면서 원하는 것은 모두 있을 것 같은 세상이다.

물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형의 정보와 지식의 양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과잉의 시대가 되면서 막상 선택은 어려워지고 더 새롭고 더 좋은 것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부족함이 없는 속에서 편리함과 만족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부족한 것이 없다보니 늘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린다.

애착과 절실함이 희박해진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존재하므로 굳이 노력을 해서 만들고 찾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발전과 혁신이 줄어들고 성장이 멈춘다.

이미 누군가 다 만들어 놓은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얻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수익을 얻는 것이 관건이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조급해 하며 스트레스 받고 불만이 생긴다.

 

과거 결핍의 시대와는 다른 스트레스다.

결핍에서 과잉의 시대로 변하면서 간절하고 절실함은 성장과 발전에서 쾌락과 만족으로 가치를 옮겨가고 있다.

 

부족함이 없는 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독이 되기도 한다.

발전을 위한 적당한 목표와 동기부여가 없다면 꿈과 희망이 없어진다. 현실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다.

과잉이 결핍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시대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생각을 분산시키는 요소가 너무 많다.

우리가 과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핍은 빈곤과 불편이기에 탈출하고자 애쓰지만,

과잉은 부족함이 없어 게으름과 안주함을 만들어 낸다.

 

스스로의 과잉과 결핍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유혹이 너무 많다.

 

모든 조직에 리더가 있다. 우리는 조직 속에서 살며 원하지 않아도 리더의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고 리더로 성장하고자 애쓴다.

리더가 주는 권위와 역할, 보상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리더로 대우 받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역할이 있다.

 

직원은 회사를 보고 입사하고 상사를 보고 떠난다는 말이 있다.  리더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서 생기는 갈등이 많다.

리더 역시 조직원이므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무리한 일을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리더의 지시에 움직이고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리더의 판단을 기다린다.

 

리더가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스스로 실무자가 되어 모든일을 다 하는 것이다. 현장의 상황을 이해하고 책임을 느끼고 함께 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각자의 역할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장의 문제를 보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책이 보인다.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전수하지 않고 직접 수행을 하면 당장의 문제 해결에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기회를 막는 것이기도 하고 다음에도 자신이 직접해야한다.

일을 맏기면 어설퍼 보이는 것이 있고 완성도가 낮은 결과를 얻게 되는 두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무리한 욕심이다.

과거의 나 역시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과거의 문제 해결 방법이 이미 있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스스로 깨달았을 때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학습하고 익혀서 내것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실력있는 사람이 대신 해버리면 영원히 발전할 수 없다.

 

리더는 직접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의 역량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직원들이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가면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무를 직접 챙기고 스스로 일을 해결하면 팀원의 기회를 빼앗는 것과 같다.

리더는 팀원들의 성장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리더가 팀원과 경쟁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누가 시민일까?

도시에 살면 모두 시민일까? 아니면 모두가 시민일까? 사전에서야 뭐라 말하던 우리들을 시민이라고 한다.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나 유래 보다는 스스로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 받으려면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시험을 봐서 평가하거니 누군가가 인증해 줄 수는 없다.

시민이 갖추어야할 것들을 갖추고 있으면 시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민이라는 말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속에서 의미있는 말이다.

 

그렇다. 시민의 중요한 의미는 여러사람이 어떻게 모여 사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었일까?

많은 자원과 구조, 체계 등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기반이 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이해 정도이며 이해하는 방식이다.

요즘 주로 쓰는 말로 소통이며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 되면서 소통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말로만 끝나지 말고 의미있는 성과를 만드는 활동이 필요하다.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통의 조건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주장이나 설명이 아닌 대화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화를 하면 공감대를 만들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말은 쉽지만 잘 안된다. 그래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다. 그렇게 연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 함께 하면 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주제로 비난과 반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자기 생각을 발전 시키는 훈련을 여러 지역에서 하고 있다.

나 역시 춘천에 살면서 춘천에서도 꾸준하게 춘천 대화 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누구나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참석할 수 있다.

 

3분씩 돌아가면서 대화하는 공감토론 방식으로 참여의 벽을 낮추고 공감 훈련을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잘 소개한 최근 나온 책이 있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 시민의 자격은 아닐까? 대화를 통해 공감할 수 있다면 시민으로 충분할 것이다.